11번가로 한국판 아마존을 만들 인물, 11번가 이상호 대표이사
글 : 최덕수
SK플래닛에서 독립해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된 11번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기업이 2분기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했는데, 그 방법이 다른 이커머스 플레이어들처럼 물량의 경쟁에 뛰어든 게 아니라 자신들만의 전략으로 거둬들인 성과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11번가는 물량, 마케팅, 유통이 아니라 ‘기술’에 방점을 찍고 이커머스 경쟁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전략을 취할 수 있는 자신감의 바탕에는 긴 시간 기술연구에 매진해 온 학자형 기업가인 ‘이상호 대표이사(이하 직함 생략)’가 위치해 있다.
음성을 연구하다 IT 기업에 터를 잡다
1971년생인 이상호는 동국대학교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에서 자연어 처리와 음성 처리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0년 LG전자기술원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였다. LG전자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음성검색을 연구하던 그는 2003년 회사를 퇴사하고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전임강사로 근무하다가 2005년 네오위즈의 2대 주주가 설립한 검색엔진 전문 기업 ‘첫눈’으로 거처를 옮겼다.
독립법인 11번가의 대표를 맡은 이상호 전 SK텔레콤 서비스플랫폼사업부장
2005년 7월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첫눈은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랭키닷컴 기준 전체 사이트 1,300위 진입, 일일 평균 페이지 조회 5만 회를 기록하면서 인기를 끈 첫눈은 이듬해 네이버(당시 NHN)에 인수되었는데, 당시 자본금 10억 원의 첫눈 인수가는 무려 350억 원에 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상호는 인수합병으로 인해 다시금 거처가 옮겨져, NHN 검색품질연구소장직을 맡게 된다.

NHN에서 검색 모델링(검색결과의 순위 알고리즘)을 관리하던 이상호는 2010년 7월부터 음성검색팀으로 거처를 옮겨 활동하게 된다. 당시 IT 기업들 대부분이 텍스트 검색의 다음 단계로 음성을 주목했으며, 그에 맞춰 2010년 10월에 네이버도 음성검색 앱을 처음으로 시장에 선보였다. 하지만 당시 네이버가 채택한 기술은 자사의 것이 아닌 HCI랩이라는 국내 음성인식 전문업체의 기술을 이용한 것이었다.
첫눈의 M&A로 인해 이상호 대표는 NHN으로 거취를 옮기게 된다
당시의 네이버 음성검색 앱은 음성인식의 측면에서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절치부심한 네이버는 이후 2개월 만인 동년 12월 22일 자신들의 기술을 적용한 음성검색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었다. 업데이트된 네이버 음성검색팀의 음성검색 서비스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음성검색 시장을 선도하던 구글에게도 견줄 수 있는 품질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팀 발족 후 5개월 만에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음성검색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던 이상호의 덕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창업 후 다음을 거쳐 SK플래닛으로
NHN에서 2011년까지 근무한 이상호는 NHN 기술연구팀 4명과 함께 회사를 나와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음성인식 전문 스타트업인 다이알로이드라는 기업을 설립해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2012년에는 앱 서비스도 론칭했다. 2012년 9월 11일 음성을 인식해 문자를 전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사명과 동명의 앱으로 출시했으며, 이 회사는 앱을 출시한 그 해 4분기에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인수됐다.
SK그룹 차원의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을 이상호 대표가 주도했다
그는 회사를 인수한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역시 검색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며 다음, 그리고 카카오의 검색기술을 향상시켜 나갔다. 그리고 다시금 회사를 옮긴 것이 2016년이었다. 그는 카카오 추천팀장을 거쳐 SK플래닛의 CTO(최고기술책임자)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가 SK플래닛에서 주도해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누구(NUGU)’였다. 2016년 8월 누구 스피커를 시작으로 전개된 SK텔레콤의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을 주도하면서, 2017년에 이르러서는 SK텔레콤의 서비스플랫폼사업부장으로 근무하며 그룹사 차원에서의 인공지능 플랫폼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독립법인 11번가의 대표가 되다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경쟁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쿠팡을 필두로 온라인 커머스 기업들이 공격적인 태세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유통대기업들도 이 경쟁에 합류한 상황이다. 이 경쟁에서 SK그룹은 SK플래닛의 자회사로 있던 11번가를 독립시켜 성장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11번가는 신설법인으로 출범했으며, 신생 11번가의 대표로 인공지능을 넘어 SK텔레콤 내에서 플랫폼 사업을 주도하던 이상호가 내정된다.
만성적자의 11번가를 살려낼 중책을 맡게 되다
SK플래닛의 자회사인 커머스플래닛이 2008년 선보인 11번가는 2016년 SK플래닛에 합병됐으며, 그 후로 2년 만에 새로운 회사로 다시 갈라서게 됐다. SK텔레콤이 기대한 것은 11번가의 SK그룹과의 시너지 효과였지만, 11번가의 체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11번가의 영업적자는 2016년 3,650억 원, 2017년 3,497억 원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매각을 시도했지만 이조차도 이뤄지지 못했다. SK플래닛은 고민 끝에 11번가의 분사를 결정했으며, 이상호에게는 신설법인 11번가의 체질개선과 시장 개척의 숙제가 던져졌다.

11번가의 대표이사로 전문경영인이 아닌 기술자, 학자인 이상호가 임명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11번가의 서비스가 어느 방향으로 진화를 꾀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11번가는 현재 타 이커머스 사업자들처럼 물류나 마케팅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고 있다. 바로 ‘기술’이다. SK그룹은 이상호를 11번가 대표로 내정하며 ‘한국형 아마존’을 만들 인물로 소개한 바 있다.
독립 이후 11번가는 커머스포털로의 진화를 위한 움직임을 계속 취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9월 1일 독립법인으로 출범해, 채 1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11번가는 거품을 빼고 기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케팅을 줄이고 커머스포털을 표방하며 검색에 다양한 기능을 붙여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제의 실적으로 나타나는 중이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오픈마켓이었음에도 8년 동안 적자를 이어오던 11번가는 올해 2분기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하며 대반전을 이뤄냈다.
흑자전환에는 성공, 이제 다음 단계로
다만 그렇다고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흑자전환의 주된 이유는 줄어든 마케팅비 덕분으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케팅을 줄이면서 11번가의 매출은 같이 줄어든 상황이다. 작년 2분기 매출이 1,707억 원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 2분기는 여기에서 15%가 감소한 1,458억 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2분기 동안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좋은 신호도 있지만, 아직까지 SK그룹이 그렸던 장밋빛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11번가가 스스로의 경쟁력을 입증할 때는 지금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11번가 대표이사로서 이상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당초에 이야기된 한국형 아마존으로서의 비전을 11번가에서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콘텐츠 검색에 관한 기능은 아직 덜 갖춰져 있고, 동영상 리뷰 등의 차별화된 요소는 11번가만의 오리지널리티로 보기는 힘들다. 이상호가 제시하고 있는 커머스포털로의 11번가의 진화가 제대로 이뤄지길, 그래서 이커머스 시장 경쟁에서 11번가가 기술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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